세계일보 2019.04.25. 21:29
울었다. 춘원 이광수가 쓴 ‘도산 안창호’ 전기를 읽다 자꾸 눈물이 났다. 도산의 단심이 백년을 굽이돌아 범부의 가슴을 친 까닭이다.
도산은 자신을 취조하는 일제 검사 앞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곧은 절개를 가진 분이었지만 극단에 치우치지 않았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선 백성들이 깨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를 사랑하거든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반일에 못지않게 극일을 중시한 것이다.
해방된 지 74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반일에 갇혀 있다. 일본의 전비(前非)를 따지는 것보다 우리가 일등국이 되는 일이 훨씬 중요한데도 대통령까지 나서 반일 정서에 불을 붙인다. 부산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철거 소동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부산시가 외교 공관 인근에 불법 설치한 동상을 철거하자 시위대가 시청을 점거하고 시장은 사과했다. 합법이 불법에 무릎을 꿇은 격이다. 준법을 국민생활의 제1조항으로 내건 도산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저급한 반일로는 우리의 국력을 단 1㎝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도산은 서로 배척하는 민족분열을 망국병으로 여기고 절대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나라가 패망하자 일본과 이완용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라고 했다. 책임은 내 것으로 돌리고 영광은 우리 모두에게 돌리자는 게 그분의 지론이었다. 지금의 위정자들은 거꾸로 한다. 병폐가 불거지면 전 정부 탓, 조상 탓을 한다. 과거의 적폐를 없애자면서 현재의 적폐엔 눈을 감는 내로남불만 계속한다.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라는 도산의 경책이 귓전을 울린다.
도산이 꿈꾸는 나라는 사랑과 미소가 넘치는 나라였다. 어떤 사상이나 평화보다 사랑이 먼저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왜 차오? 훈훈한 기운이 없소?”라며 캄캄한 식민 치하에서도 웃을 것을 권했다. 그런데 단군 이래 최고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대한민국에는 사랑과 미소가 없다. 같은 국민끼리 살의와 증오의 눈만 번뜩인다.
“세계 큰 도시에는 태극기를 날리는 우리의 상사가 있을 것이고, 태극기는 그 상품의 우수함과 절대적 신용의 표상이 될 것이오. 태평양과 대서양의 각 항만에는 태극기를 날리는 여객선과 화물선이 정박할 것이오. 지금은 내가 한인이라고 하기를 부끄러워하는 형편이지만 그날은 코리언이란 말은 덕과 지혜와 명예를 표상하는 말이 될 것이오. 이러한 민족이 되기 위해 반만년의 역사를 끌어온 것이니 이 위대한 영광을 만드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수양과 노력이오.”
도산의 예언은 오늘 우리의 발전상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한다. 삼성 휴대폰과 현대 자동차는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은 도산이 말하는 국격을 지녔는가? 우리들 각자는 그런 도덕적 품성을 갖췄는가? 그대는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가?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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