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뉴스와 시각>文정부의 '희망고문'

바람아님 2019. 4. 27. 07:42
문화일보 2019.04.26. 14:20


19세기 프랑스 작가 빌리에 드 릴아당이 쓴 단편소설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은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고문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세시대 종교재판이 횡행하던 스페인에서 아제르 아바르바넬이라는 유대인 랍비는 고리대금업을 하고 가난한 이들을 괴롭혔다는 혐의로 1년 넘게 지하 감옥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한다. 화형식 전날 랍비 앞에 나타난 종교재판관은 마지막으로 편히 지내도록 쇠사슬을 풀어준 뒤 감옥을 나간다. 혼자 남아 있던 랍비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사실을 알고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지하 감옥을 벗어나려 애쓴다. 마침내 정원으로 빠져나와 자유를 느끼는 순간 그의 앞에 종교재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날 저녁에 일어난 모든 것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랍비에게 가해진 마지막 고문이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을 보고 있으면 국민에게 가하는 ‘희망 고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 11일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했다. 연말까지 미국의 양보를 요구한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들여다보면 ‘우리 핵 무장력의 급속한 발전 현실 앞에서 본토안전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핵 무력 발전과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 시정연설 어디에도 핵을 포기하겠다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자발적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간파하고 제재를 통해 타율로라도 비핵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빨리 가고 싶지 않다”며 비핵화 대 경제적 보상이라는 빅딜을 주고받을 때까지 제재가 유지될 것임을 강조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17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진정한 징후가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자발적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비핵화시키려 노력하기보다 국민에게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희망을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평가했지만, 지록위마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 카드로 고려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북핵의 안정적 관리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핵화는 30년간 거짓 약속을 해온 북한의 선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겠다는 우리와 국제사회의 단호함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난국을 타개할 수도, 남북 경협이 이뤄질 수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비핵화를 압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말해온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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