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9.22 16:04
“한국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쓰는 식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중략) 공통적으로 20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양 끝을 가늘게 깎은 두 조각의 막대로 음식을 먹는데 (중략) 한국 사람들은 이 젓가락을 숟가락으로도 포크로도 심지어 칼의 용도로도 사용한다. 그들은 젓가락을 마술사처럼 능숙하게 사용하여 음식을 집은 다음 목구멍 속으로 던져놓고는 게걸스럽게 삼키곤 했다.” -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한국에서』 끌라르 보티에, 이폴리트 프랑뎅 지음, 태학사, 2002년 56~57쪽. |
구본신참 내세운 대한제국 식문화 전시
서양식 접목 속 격조 지킨 유물 한자리
1905년 고종이 맞은 사절단 오찬 재현도
“서울을 떠난 후로 겪어야 했던 한 가지 고충은 외국 음식과 식사법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네. 능숙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써야 했던 까닭에 처음 며칠은 제대로 먹지를 못했네. 입술을 베이고 혀를 찌르고 옷에 고기를 떨어뜨리기 일쑤였어.”
- 1896년 러시아 황제 대관식 축하사절단 일행으로 뉴욕을 방문한 김득련이 그해 5월 사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조선이 개항을 하자 외국인들뿐 아니라 그들의 음식과 식문화도 함께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 젓가락을 마술사처럼 사용하는 조선인이 신기해보였을 뿐 아니라 조선인 역시 포크와 나이프의 상차림은 새롭고 이질적인 것이었다. 토스트와 우유, 샐러드만으로 아침 식사를 대체하는 현대 한국의 식문화는 이렇듯 100여 년 전 선조들의 ‘낯선 조우’에서 시작됐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이 같은 서양문물과 전통의 접목이 ‘개혁적인 것’으로 떠올랐다. 구본신참(舊本新參), 즉 옛 것을 근본으로 새로운 것을 참작한다가 새 시대의 정신이 됐다. 고종은 커피를 ‘가비’라 부르며 즐겼던 것처럼 서양식 의례를 접목해 연회의 격을 높였고 특히 외국인을 위한 연회는 유럽식으로 바꿨다. 그러면서도 한국 전통 음식의 격과 풍미는 유지했고 황제가 참석한 사절단 연회 역시 한식으로 대접했다.
이와 같은 대한제국 시대 궁중의 상차림과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지난 20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1층 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회는 연차 기획전시인 ‘황제의 의衣·식食·주住’ 중 두 번째로 지난해 10월 ‘의衣’에 이어 올해는 ‘식(食)’을 주제로 대한제국 황실 문화를 다룬다. 황제와 황족 그리고 신하들이 먹었던 음식은 무엇인지, 서양식 연회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기록물과 사진자료, 황실 그릇과 음식상(床) 등 진귀한 유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이 같은 서양문물과 전통의 접목이 ‘개혁적인 것’으로 떠올랐다. 구본신참(舊本新參), 즉 옛 것을 근본으로 새로운 것을 참작한다가 새 시대의 정신이 됐다. 고종은 커피를 ‘가비’라 부르며 즐겼던 것처럼 서양식 의례를 접목해 연회의 격을 높였고 특히 외국인을 위한 연회는 유럽식으로 바꿨다. 그러면서도 한국 전통 음식의 격과 풍미는 유지했고 황제가 참석한 사절단 연회 역시 한식으로 대접했다.
이와 같은 대한제국 시대 궁중의 상차림과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지난 20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1층 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회는 연차 기획전시인 ‘황제의 의衣·식食·주住’ 중 두 번째로 지난해 10월 ‘의衣’에 이어 올해는 ‘식(食)’을 주제로 대한제국 황실 문화를 다룬다. 황제와 황족 그리고 신하들이 먹었던 음식은 무엇인지, 서양식 연회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기록물과 사진자료, 황실 그릇과 음식상(床) 등 진귀한 유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게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가 제26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1884~1980) 일행에게 대접한 오찬 상차림이다. 당시 21세에 불과했던 ‘미국 공주’는 윌리엄 태프트 장관이 이끈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 일원으로 그해 방한했다. 고종은 그들을 위해 전통적인 황실 잔칫상, 즉 고종 탄일상에 올린 것과 같은 전통음식을 대접했다. 17가지 요리와 3가지 장류를 포함, 총 20가지가 식탁에 올랐다. 이날 오찬은 고종이 외국인 여성과 처음 함께 한 식사자리로 알려진다.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시기에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서양식 코스요리가 제공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황제가 주최하고 참석한 경우엔 ‘한식’을 제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오찬은 앨리스 루스벨트의 자서전 『혼잡의 시간들』(1934)과 대한제국 황실 오찬 식단의 기록(미국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전시회에선 이날 오찬 요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당시 현장 자료는 남아있지 않고 웨스틴조선호텔 측이 덕수궁관리소 학예팀 및 전통 음식 분야 자문 위원들과 함께 연구, 재현한 음식 사진이다. 웨스틴조선호텔 측은 “사료를 통해 고조리서를 바탕으로 정통 레시피를 연출했으며 해당 절기에 제 맛을 내는 최상의 식재료를 썼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시기에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서양식 코스요리가 제공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황제가 주최하고 참석한 경우엔 ‘한식’을 제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오찬은 앨리스 루스벨트의 자서전 『혼잡의 시간들』(1934)과 대한제국 황실 오찬 식단의 기록(미국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전시회에선 이날 오찬 요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당시 현장 자료는 남아있지 않고 웨스틴조선호텔 측이 덕수궁관리소 학예팀 및 전통 음식 분야 자문 위원들과 함께 연구, 재현한 음식 사진이다. 웨스틴조선호텔 측은 “사료를 통해 고조리서를 바탕으로 정통 레시피를 연출했으며 해당 절기에 제 맛을 내는 최상의 식재료를 썼다”고 설명했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일행단에 극진한 대접
고종이 앨리스 일행을 극진하게 대접한 것은 당시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앨리스가 포함된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은 앞서 두달전 일본을 거쳐오면서 소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뒤였다. 러‧일 전쟁 강화협상 차원에서 합의된 이 각서엔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가 포함돼 있었다.
이런 것도 모른 채 고종황제는 정성을 다했지만 앨리스는 크게 감동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서전에 ‘중명전 2층에서 폐현(황제를 만남)을 마치고 좁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황실 문양이 장식된 그릇에 담긴 한식을 먹었으며 오찬을 마치고 황실 문장이 장식된 그릇과 황제와 황태자의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고 기록했다. 나아가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태자는 황족이라는 존재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조그만 궁에서 측은하고 멍하게 지내고 있다’고 평했다.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덕수궁 관람객(입장료 일반인 1000원)에겐 무료 공개된다.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 가능)까지 관람할 수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1층 전시실은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으며, 1층을 제외한 석조전 관람은 종전처럼 예약제를 통해 해설사 동반으로 진행된다. 인근 한식문화관(청계천로)과 연계해 대한제국 국빈 연회 음식을 만들어 보는 요리 수업(참가비 3만원)도 진행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이런 것도 모른 채 고종황제는 정성을 다했지만 앨리스는 크게 감동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서전에 ‘중명전 2층에서 폐현(황제를 만남)을 마치고 좁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황실 문양이 장식된 그릇에 담긴 한식을 먹었으며 오찬을 마치고 황실 문장이 장식된 그릇과 황제와 황태자의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고 기록했다. 나아가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태자는 황족이라는 존재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조그만 궁에서 측은하고 멍하게 지내고 있다’고 평했다.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덕수궁 관람객(입장료 일반인 1000원)에겐 무료 공개된다.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 가능)까지 관람할 수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1층 전시실은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으며, 1층을 제외한 석조전 관람은 종전처럼 예약제를 통해 해설사 동반으로 진행된다. 인근 한식문화관(청계천로)과 연계해 대한제국 국빈 연회 음식을 만들어 보는 요리 수업(참가비 3만원)도 진행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114년 전 ‘미국 공주’ 앨리스 루스벨트가 받은 잔칫상
지난 20일 덕수궁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 개막에 앞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2층 연회장에선 114년 전 앨리스 루스벨트 일행에게 제공됐던 대한제국 국빈연회음식 재현 행사가 열렸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조리팀 셰프들이 처음으로 고증‧복원해낸 연회 음식은 총 20가지로 열구자탕, 골동면, 수어증, 편육, 전유어, 전복초, 화양적, 후병, 약식, 숙실과, 생리(배), 생률(밤), 포도, 홍시, 정과, 원소병, 장침채 등 17가지와 양념류인 초장, 개자(겨자), 백청 등 3종이다. 이 음식들은 당시 주안상, 면상, 다과상으로 나누어 제공된 것으로 보인다.
웨스틴조선호텔 측은 “연회 메뉴의 재료는 고종대 의궤의 친품과 『진연의궤』(1902년)의 고증된 자료를 더불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통 음식 요리책을 바탕으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조리법은 19세기 전후로 20년 간행 조리서인 『조선요리제법(1917년 초판본)』, 『시의전서』, 『규합총서』, 『음식방문』, 『주식시의』, 『부인필지』 책을 기반으로 했다. 상차림은 근대 조리서의 상차리는 법 중 손님 상차림 및 어르신 생신상, 면상 상차림 배치를 『조선요리제법(1921년)』, 『조선요리법(1935년)』, 『이조요리통고(1957년』를 참고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장에서 일부 시식한 결과 전체적으로 슴슴하고 단아한 맛이 식탁의 격을 높였다. 특히 일반적으로 ‘신선로’라고 불리는 열구자탕은 참석자 다수가 최고의 음식으로 꼽을 정도로 형태와 맛 모두 일품이었다. 꿩, 진계, 숭어, 곤자손, 등골, 간, 천엽, 게알 등 27가지 재료를 사용하면서 각각의 조리법을 달리하여 지지거나 굽고 삶아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리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전통 한식 요리로 알려진다.
또 메밀면을 사용한 비빔국수인 골동면도 특이했는데, 국빈메뉴에 면이 포함된 것을 두고 레시피 설명을 맡은 이영미 셰프는 “당시 탄신일 혹은 명절 등 잔친상에 주로 면상을 차렸기에 이날 접대상차림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다채로운 메뉴를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한다.
웨스틴조선호텔 측은 “연회 메뉴의 재료는 고종대 의궤의 친품과 『진연의궤』(1902년)의 고증된 자료를 더불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통 음식 요리책을 바탕으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조리법은 19세기 전후로 20년 간행 조리서인 『조선요리제법(1917년 초판본)』, 『시의전서』, 『규합총서』, 『음식방문』, 『주식시의』, 『부인필지』 책을 기반으로 했다. 상차림은 근대 조리서의 상차리는 법 중 손님 상차림 및 어르신 생신상, 면상 상차림 배치를 『조선요리제법(1921년)』, 『조선요리법(1935년)』, 『이조요리통고(1957년』를 참고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장에서 일부 시식한 결과 전체적으로 슴슴하고 단아한 맛이 식탁의 격을 높였다. 특히 일반적으로 ‘신선로’라고 불리는 열구자탕은 참석자 다수가 최고의 음식으로 꼽을 정도로 형태와 맛 모두 일품이었다. 꿩, 진계, 숭어, 곤자손, 등골, 간, 천엽, 게알 등 27가지 재료를 사용하면서 각각의 조리법을 달리하여 지지거나 굽고 삶아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리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전통 한식 요리로 알려진다.
또 메밀면을 사용한 비빔국수인 골동면도 특이했는데, 국빈메뉴에 면이 포함된 것을 두고 레시피 설명을 맡은 이영미 셰프는 “당시 탄신일 혹은 명절 등 잔친상에 주로 면상을 차렸기에 이날 접대상차림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다채로운 메뉴를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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