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선희의 프레임]사진이 내 삶을 구했다

바람아님 2020. 2. 6. 09:07
아시아경제 2020.02.05. 13:36
2017년 Lonely Tree 나미비아 데드블레이. 천 년의 시간을 잠시 나마 함께하며 행복했다.(사진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나미비아 데드블레이에서 천 년 동안 죽었으나 사라지지 않고 꿋꿋이 서있는 고목을 바라보며 난 생각했다. 그 뒤로 태양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듄(Dune·모래 언덕)의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색을 바라보며 난 또 생각했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천 년의 시간 속에서 이 빛들을 바라보며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 12시간이라도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실 거의 모든 투어는 그곳에 30분 정도 머무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랜 시간 이곳에 오기를 꿈꾸어 왔던 나는 30분만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오랜 시간 바람에 비해 억울하고 억울했다! 그곳에 더 오래 머물려면 몇 달 전에 미리 신청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쪽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사진가로 살아 온 이십여 년의 경험은 나를 그냥 그렇게 순응하게 놔두지는 않았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끈질긴 장소 섭외의 피로 웃돈에 웃돈, 거의 이곳에서는 터무니없는 수준의 검은 돈이 오가고서야 겨우 그곳에 12시간 정도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는 낮 12시엔 몸을 숨길 그늘조차 없는,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그 시간이 난 아주아주 행복했다. 바람 한 점, 작은 벌레 하나 날아다니지 않는 그곳은 나를 완전 다른 시간과 감각으로 옮겨 놓았다. 상대성이론의 시간 속으로, 인터스텔라의 그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 년의 시간 속으로, 빛의 세계로….

'데드블레이를 품고 있는 나미비아 내셔널공원 사진가 투어를 예약해야겠다.'


이 생각만으로도 피가 들끓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사진이란 놈은 나를 호모비아토르로 만들었다. 방랑하는 사람, 길 위에서의 시간이 가장 '심장 뛰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가로 살아온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방랑하는 삶을 꿈꾸고 있는 걸 보면 나의 '방랑인자'가 나를 사진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진은 나를 '머물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약간은 불행하지만 '고민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삶 그 자체에 떠밀려 살아가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말하자면 호모 비아토르로 만든 것이다. 엄마로, 딸로, 아내로 살다가 문득 이 삶이 내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를 짓누를 때면 인터스텔라의 공간으로 여행을 꿈꾼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을 헤매고 나미비아 데드블레이의 적막 속에서 천 년을 죽은 나무를 바라보던 그때처럼.

내 발자욱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카뮈의 이방인의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그곳에서 난 감사했다. 내게 사진이 있게 해주신 신에게 감사한다고, 적막을 깨뜨리는 셔터 소리에 난 또 생각했다.


한곳에 머물며 책임지고 사는 삶을 못내 밀어내는 것이 역마살 낀 인간이라고. 누군가 내게 던진 한 마디에 대한 어린 수긍에서 시작된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정착해 땅을 일구는 쪽보다는 유랑민에 가까운 종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이런 내게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을까? 작은 배낭 하나에 똑딱이 카메라 하나 들고 길을 나설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내 삶을 구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다.


내 피는 여전히 들끓고 있고 중2 아들을 둔 엄마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팔순 가까운 내 어미에겐 살가운 딸도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늘 떠남을 꿈꾼다. 그것이 여행이든 촬영 출장이든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고 길 위에 쌓여진 나의 시간들과 생각들이 참 좋다. 버스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걷는 나의 신발 위로 많은 생각들이 왔다가 간다. 간혹 그 생각들이 머물러서 글로 남겨져 진짜 나의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지금도 여행 중이다….


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