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강천석 칼럼 - 美·中 각축 시대, 미국의 의미

바람아님 2014. 4. 6. 11:16

(출처-조선일보 2013.11.08 강천석 주필)

한·미 동맹, 대륙 급변에 휘말려 들지 않게 한 발판
미·중 兩者擇一論… 선악二分法으론 운명 개척 어렵다

강천석 주필'한반도 하늘에 해가 둘'이라는 소리가 부쩍 자주 들린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세력을 다투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이다. 
좌파 일부는 공공연히 중국을 '솟는 해', 미국을 '지는 해'로 비유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대륙의 판세를 읽지 못해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고난을 
안겼던 사례를 들먹이며 은근히 한·미 동맹에 한 방 먹이기도 한다. 
일부 우파 가운데는 미·중 간에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선지자(先知者)라도 되는 
양 무게를 잡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옛 왕조(王朝) 교체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걸 뛰어넘는 변화를 불러왔다.
1960년대 수십만 홍위병 물결로 넘실대던 베이징과 상하이는 더 많은 봉급과 더 높은 이익을 좇는 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시골뜨기 같던 중국 기업들은 탐나는 회사와 자원을 놓고선 엄청난 입찰 가격을 써내 경쟁자의 기를 죽이는 겁 없는 사냥꾼으로 변했다. 미국·유럽 기업들은 콧대가 꺾인 채 중국 기준에 맞추기 바쁘다. 
한·중 무역량도 한·미, 한·일 간 무역량을 합한 것과 얼추 비슷하다. 
강남 성형외과에 일감을 주는 것도 중국 관광객이고, 호텔·식당·쇼핑가게도 중국 관광객 숫자의 오르내림에 따라 주름이 늘고 
준다.

대륙에 새로운 강대국이 출현하면 그 충격은 즉각 그 강대국과 육지로 국경을 접한 나라에 전해진다. 
이어 충격은 그 너머 국가로 번져간다. 
새 강대국과 해협(海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나라, 대양(大洋) 건너편 나라로 파도가 도달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

프랑스에 나폴레옹이 등장한 여파(餘波)는 곧장 프랑스와 육지로 국경이 맞닿은 독일·스페인·이탈리아를 향해 전쟁의 모습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2파(波)가 그 너머 오스트리아·포르투갈 국경을 헤집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군대는 그로부터 몇년이 흐른 후에도 수십㎞에 지나지 않는 도버 해협에 막혀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유럽 대륙에서 나폴레옹의 패권(覇權)을 견제할 기회를 엿보던 영국군이 도버를 건너 먼저 선수(先手)를 쳤다. 
'지리(地理)가 운명이다(Geography is destiny)'는 말이 태어난 고향이 유럽인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 이래 왕조 교체를 비롯한 중국 대륙의 정세 급변이 피어 올린 흙먼지를 맨 먼저 뒤집어쓴 건 한반도였다. 
대륙의 왕조가 수(隋)에서 당(唐)으로, 송(宋)에서 원(元)으로, 원에서 명(明)으로, 명에서 청(淸)으로 바뀔 때마다 
그 충격은 요즘의 중국발(發) 스모그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를 덮쳤다. 
삼국통일·고려 건국·조선 건국 연대와 대륙 정세 변동 시기가 묘하게 맞물린 한·중 역사 연표(年表)에 그 흔적이 
마맛자국처럼 패어 있다.

지난 30년 중국은 옛날의 왕조 교체보다 더한 격변을 겪으며, 그 주변으로 바람과 파도를 실어 보냈다. 
그러나 중국을 흔든 지진의 진도(震度) 크기에 비해 한반도에 도달하는 충격의 강도는 전례(前例)를 찾기 힘들 만큼 완만해졌다.
쉽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역사 교과서를 잠시만 들춰보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무엇이 과거와 달라졌을까. 한반도와 중국 간의 지정학적 연관성이 과거보다 옅어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중국에서 발생한 지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라도 새로 설치된 것일까. 
이 모든 변화를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한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구(文句) 덕분으로 돌리긴 힘들다.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를 키우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적대국(敵對國)이었다는 기억을 지워온 양국 관계 발전이 
큰 몫을 한 건 분명하다. 그래도 그것만으론 수수께끼가 다 풀리지 않는다.

정답은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은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가 거대 중국이 잡아끄는 인력(引力)에 속절없이 휘말려 들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버텨주는 받침대 구실을 해 왔다. 
미국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국가(America the peace keeper)'라고 미화(美化)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 충격을 흡수하는 균형추(balancer)로써 작용하는 오늘의 현실은 현실대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은 한·미 동맹을 냉전의 유산이라며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건 그것대로 소화할 방법을 찾는 게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다.

'한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며 '한·미 동맹'과 '한·중 우호'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식의 
양자택일론(兩者擇一論)으로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순 없다. 
두 나라를 '지는 해'와 '솟는 해'로 나누는 의도적 단순 이분법은 사태를 오도(誤導)한다. 
역사는 현실에 갇혀 미래를 보지 못한 국가들의 묘지다. 
그 곁엔 기회주의에 편승(便乘)하려다 기회를 날려버린 실패한 국가들이 잠들어 있다. 
세계와 동북아가 함께 바뀌는 역사의 현장에서 경솔하게 나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