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강천석 칼럼 - 세계는 대한민국 中心으로 돌지 않는다

바람아님 2014. 4. 7. 08:34

(출처-조선일보 2013.11.23. 강천석 주필)

동맹도 이익 함께 나누고 부담 같이 져야 튼튼
이 나라 정치인들, 비현실적 안경 벗고 세계 바로 볼 때

강천석 주필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이 허황된 천동설(天動說)이 1000년 넘게 천문학의 주류(主流) 자리에 버텨온 걸 보면 이게 얼마나 당시 사람들 마음에 들고 또 그들을 안심시켰는지 알 만하다. 사실 그렇게 믿어도 세상을 사는 데 아무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 이 나라 정치인들처럼 세계가 대한민국을 축(軸)으로 돌고 있다고 잘못 믿고 행동하는 건 
위험천만이다. 최근 한반도 밖에서 들려오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는 '한국판 천동설'에 대한 경고다.

엊그제 미 국방부 고위 인사는 한국이 껄끄러워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놓고 "한·미·일이 
동북아 위협에 맞설 강력한 억지력이 될 것"이라며 '여기엔 북한 위협도 포함된다'고 못을 박았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동맹국 미국이 제3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일본이 반격할 권리를 가리킨다. 집단적 자위권은 모든 동맹의 핵심 요소다. UN 헌장도 주권 국가의 
고유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과거 60년 동안 침략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의미와 평화 헌법의 정신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해왔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유보(留保)라는 벽을 넘게 목말을 태워준 게 미국이다. 달라진 일본 뒤엔 달라진 미국이 있다.

그 다음 날인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어느 강연에서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안보회의(NSA) 창설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일본 측 파트너와 현안을 논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상당히 노골적이다. 그는 또 미국의 최우선 경제 
관심사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성사시키는 것이고,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4월 아시아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일본은 국내 이익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미 TPP 참여 의사를 밝혔다. 미·일이 오바마 대통령 
방일(訪日)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은 동맹 관계나 적대(敵對) 관계에 다 같이 적용된다. 1998년 6월 25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을 건너뛰고 중국으로 날아가 일본에 들르지 않고 귀국해 버린 클린턴 방중(訪中) 9일 내내 미국과 
중국의 얼굴색을 살폈다. '표류(漂流)하는 미·일 동맹'이란 걱정이 쏟아졌다. 2년 전 미국 고위 관리가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는 미·일 동맹에 따라 미국이 보호해야 할 사안 밖의 문제라고 한 게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라고 수군거렸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미국을 향한 의심이 합쳐 빚어낸 마음의 공황(恐慌)이었다.

그랬던 미·일 관계가 '척하면 삼척하는' 사이로 변했다. 얼마 안 가 미국이 센카쿠열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 입장을 대놓고 
옹호하고 나설 것 같은 분위기다. 미·일 두 나라가 중국을 향한 공동의 두려움으로 서로에 대한 의심을 지우고, 
두 나라가 동맹의 이익과 부담을 재조정한 데 따른 결과다.

미국은 부강한 중국이 언제까지 배부른 현실에 만족하는 국가로 머물지 않으리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10년 전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이론가는 중국 경제 규모가 중국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과 같아질 무렵이면 2001년 미국 경제 규모의 1.5배,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의 절반 수준에 이르면 미국의 2.5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는 이런 계산법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의 맞수였던 소련 경제 규모가 미국의 절반 수준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경제력이 군사력으로 전환되는 사태를 걱정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 상황에 대비해 현실적 동반자로 일본을 꼽아왔다.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가고 있다. 과녁으로 북한을 앞세웠지만 중국을 겨냥한 게 분명한 미사일 방어망(MD) 구축에도 서슴없이 몸을 담갔다. 일본이 미·일 신밀월(新蜜月) 시대를 타고 미국의 전폭적 신뢰를 등받이 삼아 한국을 건너뛰고 중국에 정상회담을 제의했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퍼져가고 있다. 언젠가 본 듯한 필름이 다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란 문제아를 곁에 둔 대한민국의 선택이 최강국 미국만큼 자유자재(自由自在)할 순 없다. 섬나라 일본처럼 대쪽 가르듯이 양자택일(兩者擇一)하기도 어렵다. '한·미 동맹'과 '한·중 우호' 사이의 균형 문제에 대한 정답은 온 나라의 지혜를 모아 더듬듯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한반도 통일 분위기가 익어가면 '한·미 동맹 축소'와 '통일에 대한 중국 지원'을 맞바꾸기할 것'이라는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말이 그 혼자만의 의심이 아니라는 사실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중심(中心)으로 돌고 있다는 믿음은 위험천만하고 허무맹랑한 정치적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안경을 벗어야 대한민국이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