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수의(壽衣) 사기

바람아님 2014. 7. 30. 09:59

(출처-조선일보 2014.07.28 김태익 논설위원)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수의(壽衣) 때문에 고민했다. 수의는 돌아가신 이를 저세상으로 보낼 때 입혀 드리는 옷이다. 

장례 업자가 두 가지 견본을 보여주었다. 값이 수월찮게 차이가 났지만 싼 쪽을 고를 수는 없었다. 

생전의 불효(不孝)를 몇 푼 더 되는 저승길 옷값으로나마 조금 탕감받아 보자는 마음이 작동했을 것이다.


▶장례 때면 으레 삼베로 된 수의를 쓰는 게 오래된 풍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삼베 수의가 나온 경우는 없다. 

무덤 속 옷들은 치마저고리나 관복·혼례복 등 모두 망자(亡者)가 일상 입던 옷이었다. 

삼베가 수의 옷감으로 쓰인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라고 한다. 삼베옷은 원래 더 좋은 옷감이 없어서 입거나 죄인이 입던 옷이었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태자는 신라가 망한 후 삼베옷을 입고 전국을 떠돌았다. 

부모를 잃고 죄인 심정이 된 자식들이 장례 때 삼베옷을 입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만물상 일러스트

▶그랬던 삼베옷을 부모를 마지막 호사시켜 드리겠다고 쓰고 있으니 보통 아이러니가 아니다.

지금은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삼베의 생산이 줄어 대부분 중국산을 쓰고 고급 안동포의 경우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것도 있다. 

수의는 조선시대 관복을 본떠 치렁치렁 거창하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 입어보지 않던 옷을 걸치고 저세상에서 얼마나 편히 

지내실지도 알 수 없다.


▶노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중국산 싸구려 수의를 국내산인 것처럼 속여 팔아온 일당이 엊그제 경찰에 붙잡혔다. 

9년 동안 1만7000여명의 노인들에게서 300억여원을 챙겼다. 14만원짜리 수의를 200만원씩에 팔기도 했다. 

노인 피해자 대부분은 '자식들 짐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에서 아껴뒀던 돈을 털었다고 한다.


▶화장(火葬)이 대세가 돼가는 요즘 추세로 보면 아무리 비싼 수의나 호화 관(棺)도 몇 시간 후면 소각로에서 한 줌 재가 된다. 

우리나라 한 해 사망자는 내년 30만명, 2035년 50만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1인당 장례비용은 1200만원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2~5배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50년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장례비용은 

64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 마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을 파고드는 악덕 상혼(商魂)을 용서해선 안 된다. 

그에 앞서 우리 장례문화에 쓸데없는 낭비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르신들이 먼저 삼베 수의 대신 평소 좋아하고 즐겨 입던 옷을 정성껏 세탁하고 손질해 입혀달라고 자녀에게 부탁해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