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신정록의 태평로] 역전된 韓·日 '정치 능력'

바람아님 2014. 7. 30. 12:20

(출처-조선일보 2014.07.29 신정록 논설위원)


신정록 논설위원우리의 눈에 폭주(暴走)로 보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치는 일본 내에서는 
'가까스로 부여잡은 미래'와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20년'이 꽉 차오던 2009년에 1955년 이래 
이어져 온 자민당 1당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일본 열도에 팽배한 열패감 속에서 집권한 민주당은 
그러나 우왕좌왕하다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정치 전면에서 퇴출당하고 아베의 자민당에 다시 정권을 
내줬다.

'잃어버린 20년'에 해당하는 자민당 집권 말기에 일본 정치는 정처 없는 미아(迷兒) 신세였다. 
민주당 집권 기간을 포함해 아베가 집권하기 이전 23년 동안 일본의 총리는 무려 20명이었다.
5년 5개월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를 빼면 평균 재임 기간 1년도 되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은 일본에 남은 것은 우경화였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12월 집권한 아베는 '정신 재무장'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침략 역사의 부정과 애국 교육 강화였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국제전에 참전할 수 있는 길에 뛰어들었고, 
일본 방위산업체들이 해외에 무기를 내다 팔 수 있는 체제 정비도 완료했다.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도 같은 차원이었다.

정권 출범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아베는 첫 고비를 맞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발하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밑으로 내려갔다. 
경제정책도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아베노믹스' 반대가 찬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아베 정권의 임기는 2년 5개월쯤 남았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날지, 장기 집권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일본이 비로소 무기력한 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걸 토대로 수정하면서 미래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일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소한 정치 생산력은 한국이 앞선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본 경제가 일류일 때도 정치는 한국은 이류, 일본은 삼류라고 했다. 일본 정치가 무엇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반면 
한국은 엄청난 갈등 속에서도 어쨌거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경제 침체도 문제지만 정치의 침체와 무능력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강인함·도덕성·능력, 아무것도 없는 '3무(無) 정치'다. '새 정치'라는 것도 무능력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유권자가 정치 전체를 심판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저 누군가에게 투표하고 그 누군가가 그 이전의 누군가와 똑같거나 
오히려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정치인도 유권자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볼 때 
'한·일 정치 능력의 역전'은 이미 현실이다. 구조화·장기화할 가능성도 높다.

이건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 승패와도 관계없다. 
내일 재·보선이 끝나면 20개월간 선거가 없다. '정치 골든 타임'이라 할 만하다. 
이 기간 동안 정치가 할 일은 1997년 이후 국민적 자신감이 가장 떨어져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가는 것이다. 
구조 개혁은 경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개헌, 선거구제와 공천제도 개편 등을 모두 꺼내놓고 공론화해야 할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