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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브렉시트(Brexit)

바람아님 2016. 6. 15. 07:24

(출처-조선일보 2016.06.15  김태근 논설위원)

"이민자들 탓에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인구 25만의 영국 중북부 소도시 헐(Hull)에서 평생 살았다는 50대 기계공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 도시 주민 열에 한 명은 동유럽·아랍계 이민자다. 
"여기 오래 살면 일자리 경쟁은 치열해지고 월급은 제자리라는 걸 알게 된다." 
대학교수도 거들었다. 토박이들은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고향이 낯선 무국적 도시로 변해 간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주 헐 사람들 목소리를 담은 장문의 르포를 실었다. 
그러면서 '전국에 이런 지방이 수천 곳'이라고 했다.

▶대다수 영국인은 유럽과 영국이 별개라고 여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프랑스와 치른 백년전쟁에서 패해 대륙에 정치 영향력이 줄어든 역사, 
대영제국이 세계를 호령했던 자부심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영국인은 '하나의 유럽'이 마뜩잖다. 
유럽연합(EU) 전신(前身)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하고 16년 지나서야 지각 가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입 2년 만에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까지 했다. 
대륙에서 밀려든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만물상]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여드레 앞이다. 엊그제 현지 여론조사에서 탈퇴 찬성자가 절반을 넘겼다. 
작년 5월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 때만 해도 희박하다더니 현실이 되려 한다. 
브렉시트는 영국(Britain)의 유럽 이탈(exit)을 뜻한다.

▶영국 외교 전문가 마크 레너드는 이렇게 점쳤다. 
"투표의 초점이 이민자 문제에 맞춰진다면 탈퇴론자가 이길 것이다. 
경제에 맞춰진다면 질 것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7년 만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브렉시트를 하고 나면 GDP가 5% 줄어든다는데도 탈퇴 여론이 치솟는다. 
작년에만 33만명을 넘긴 이민자에 대한 염증이 경제 논리를 압도한다. 
영국이 EU에 남으면 앞으로도 이민을 계속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EU 이탈은 세계경제에 대형 악재다. 이틀 새 코스피지수가 2% 넘게 떨어졌고 아시아·유럽 시장도 마찬가지다. 
유럽 내부 갈등이 커지고 네덜란드·  핀란드가 추가 탈퇴할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과 독일 총리까지 나서 영국을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 다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속을 끓인다.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받은 이민자가 지역 정체성을 위협하는 영국의 현실도 남의 일이 아니다. 
농촌과 중소기업 일손 메우느라 해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우리도 머지않아 '헐 사람들 푸념'을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