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9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1] 성실의 의미

조선일보 2021. 10. 15. 03:02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서 ‘성실(誠實)’은 ‘부지런하고 착실한’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성실한 사람은 보통 태도가 반듯하고 주어진 일을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탓인지 성실의 영어 번역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대개 ‘diligent’나 ‘hard working’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그러나 성실의 본래 뜻은 그와는 차이가 있다. 성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주된 뜻은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성(誠)과 실(實)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참됨[眞]이 본래 뜻이다. 誠은 유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최상위 덕목이다. 중용(中庸)은 誠을 ‘진실무망(眞實无妄)’으로 해석한다. 거짓 없는 진실함, 헛되거..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울어라, 내 안의 조코비치여

조선일보 2021. 10. 14. 03:03 US오픈 테니스가 끝난 지 한 달이 됐지만 결승전에서 조코비치가 울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경기에서 졌거나 지고 있을 때 울었다면 벌써 잊혔을 것이다. 그는 한창 게임을 따라잡던 도중에 구슬프게 울었다. (중략) 1994년 5월 1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F1 레이스에서도 세나는 선두로 달리고 있었다. 슈마허가 바로 뒤에서 시속 300㎞로 따라붙고 있었다. 여섯 번째 바퀴에서 세나는 곡선 코스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우측 방호벽을 전속력으로 들이받았다. 헬기가 그를 즉시 병원에 이송했으나 그날 숨지고 말았다. (중략)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조코비치의 순간을 만난다. 앞에는 백정이 칼 쓰듯 라켓을 내리찍는 메드베데프가, 뒤에는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백영옥의 말과 글] [221] 흔들림과 균형 사이

조선일보 2021. 10. 09. 00:00 물건이 공간의 주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청소를 하겠다고 결심한 날, 어느새 창고가 된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오래 전 회사원 시절의 업무 일지를 발견했다. 몇 장 넘겨보다가 그때의 나를 압도했던 시가 떠올랐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쓴 최승자의 문장이었다. 업무 일지 속에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혼란이 가득했다. 게으른 내가 하루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며 쉴 새 없이 흔들리고 고민한 흔적들이었다. https://news.v.daum.net/v/20211009000027475 [백영옥의 말과 글] [221] 흔들림과 균형 사이 [백영옥의 말과 글] [221] 흔들림과 균형 사이 물건이 ..

[아무튼, 주말] 내 안의 귀찮음과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나요?

조선일보 2021. 10. 02. 03:07 [김영민의 문장 속을 거닐다] "욕심이 있어야 인생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명론' 그는 평생 귀찮음과 싸워왔다. 망연하게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그가 무슨 심오한 학술적 사색에 잠겨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귀찮음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귀찮음과의 한판 승부, 그건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 치르는 세계대전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귀찮음은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기세로 존재의 구석구석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귀찮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단련해 온 의지력이라는 군대를 파병한다. 잘 싸워다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람 꼴을 하고 살게 해다오. https://news.v.daum.net/v/2021100..

[백영옥의 말과 글] [220] 질문의 기술

조선일보 2021. 10. 02. 00:00 인터뷰어가 되어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질문에도 거침없이 대답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말을 잘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계속 질문을 던져온 사람들이었다. 더 시간이 흘러 인생의 빅데이터가 쌓이자 ‘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사람보다 한 단계 고수들을 알게 됐다. 그들은 가장 잘나갈 때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끼며 최악을 대비한 질문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때 ‘답’은 ‘질문’의 독창성에 비례한다. https://news.v.daum.net/v/20211002000036930 [백영옥의 말과 글] [220] 질문의 기술 [백..

[백영옥의 말과 글] [219] 상팔자론

조선일보 2021.09.25 00:00 추석 때만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지는 때도 없다. 이때를 전후로 쏟아지는 ‘명절 이혼’ 같은 헤드라인도 클리셰처럼 인기 기사 목록을 지키고 있으니 더 그렇다.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인지 추석 때 ‘신이 내린 대한민국 3대 남편’이라는 장항준, 이상순, 도경완의 인터뷰를 차례로 봤다. 장항준 감독은 7년 전 직접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옆에는 남편의 박장대소 인터뷰에도 아랑곳없이 초집중 모드로 대본을 쓰던 김은희 작가가 있었다. https://news.v.daum.net/v/20210925000027713 [백영옥의 말과 글] [219] 상팔자론 [백영옥의 말과 글] [219] 상팔자론 추석 때만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지는 때도 없..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9]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조선일보 2021. 09. 17. 03:00 에도 막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끈기와 인내의 화신으로 유명하다. 끈질기게 버티며 때를 기다리는 그의 성품은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비유로 표현되곤 한다. 이에야스가 집권에 이르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유년기에는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눈칫밥을 먹어야 했고, 장성해서는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당대의 권력자에게 견제를 받아 숨을 죽여야만 했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와 처와 자식이 권력 투쟁에 희생되는 역경을 겪으면서도 ‘덴카비토(天下人)’의 자리에 오른 이에야스는 쇼군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https://news.v.daum.net/v/20210917030050921 [신상목..

[백영옥의 말과 글] [218] 설렘과 익숙함 사이

조선일보 2021. 09. 18. 00:00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의 카피는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였다. 이혼한 남편과 한 번 더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파격적이었다. 그 후, 관련 이야기들이 쏟아졌는데 옆방에 전처가 살거나, 구 여친 클럽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말을 말자. 하지만 최근 실제 사귀고 있거나, 헤어진 커플들이 상대를 바꿔 데이트하거나, 이혼한 커플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https://news.v.daum.net/v/20210918000036321 [백영옥의 말과 글] [218] 설렘과 익숙함 사이 [백영옥의 말과 글] [218] 설렘과 익숙함 사이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의 카피는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였다. 이혼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