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 5340

[사진의 기억]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중앙SUNDAY  2024. 11. 9. 00:16 어린 소녀가 서 있다. 열린 문 옆에 있지만 나오려 한다기보다는 등 뒤에 놓인 실내의 어둠 속에 부동의 자세로 잠겨있다. 사진가 해정이 여행 중 라오스의 한 마을에서 만난 소녀다. 사진을 찍고, 라오스를 떠났지만, 이후로 해정은 그 소녀와 ‘합체되어 분리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진 시리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그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소녀가 푼크툼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진 용어인 ‘푼크툼’은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추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사용되는 푼크툼이, 해정에게는 세상을 ..

평화로운 전원 배경의 부부 초상화가 폭로하는 건… 땅을 사랑한 정략결혼[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동아일보  2024. 11. 5. 22:57 18세기 부동산 소유욕 부각한 그림 英 게인즈버러 ‘앤드루 부부’ 초상화… 대농장 배경으로 자신감 있는 표정 화가는 앤드루 부인 가문의 채무자 그림으로 갚으며 불편한 감정 녹여 땅에 대한 욕망을 가장 잘 담은 작품이라면 18세기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그린 ‘앤드루 부부’ 초상화가 아닐까 한다. 평범한 부부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배경에 보이는 드넓은 땅 모두가 이 부부가 소유한 거대한 농장이다. 실제로 그림 속에서 땅을 그린 부분이 크게 강조되어 있어,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중심으로 부부 초상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한 삼중 초상화라고 불릴 만하다. 앤드루 부부는 자신들의 집과 대농장 사이에 있는 오크나무의 벤치에 앉거나 기대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5] 여성 유권자

조선일보  2024. 11. 3. 23:54 Tammy Wynette ‘Stand By Your Man’(1968) 마지막 투표함이 열릴 때까지 모른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상 유례없는 초박빙 양상이 개표 막바지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부인 멜라니아는 거의 은둔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을 꿈꾸며 정력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해리스 후보의 남편 엠호프와는 다르다. 멜라니아는 선거보다는 자신의 회고록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인상이다. 많은 선거 전문가는 이번 선거가 여성 유권자와 백인 남성 노동자층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992년 대선 과정에서 클린턴의 배우자인 힐러리는 “태미 와이넷의 노래처럼 남편 옆이나 지키는..

[황정수의 그림산책]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국제신문  2024. 11. 3. 19:18 황정수 미술평론가 올해는 채색화의 선구자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술계가 힘을 합쳐 회고전이라도 준비해야할 기념비적인 해이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고흥군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지만 한국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천경자의 말년을 괴롭게 했던 미인도 위작 사건과 작품세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탓이 크다. 작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위작 사건은 결국 화가를 화단에서 모습을 감추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작품 감정에 불성실하고 불분명한 결론을 내린 한국화단은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천경자는 여성화가 불모시대였던 근..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4] 맥도널드 햄버거

조선일보  2024. 10. 28. 00:12 Wesley Willis ‘Rock’n’Roll McDonald’s’, (1995) 패스트푸드로서는 단연 세계 1위 기업. 코카콜라·아이폰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맥도널드. 1954년 시카고에서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연 이래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기업이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인 맥도널드 형제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드라이브 인 노점을 연 것은 1940년이었다. 당시 맥도널드는 주력 메뉴가 햄버거가 아닌 바비큐였다고 한다. 형제는 곧 한계를 깨닫고 시스템을 간편하게 바꾼다. 즉석에서 최소한의 시간과 인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수로 메뉴를 축소했다. 또한 주문 시스템..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3] 밥 딜런과 노벨 문학상

조선일보  2024. 10. 20. 23:54 Bob Dylan ‘Murder Most Foul’(2020) 1964년 노벨 아카데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를 지명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어떤 인간도 살아있는 동안 신성시되길 원치 않는다”고 피력하며 수상을 거절했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 문학상 사상 초유의 수상 거부다. 물론 그 이전인 1958년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소련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수상 거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양측 진영 간 첨예한 갈등 때문이었다. 또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30년 지난 뒤 대리 수상한다. 사르트르는 노벨상 이전에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거부한 적이 있다. 프랑스 고..

“파리 정복” 꿈꿨는데 세상 평정…780억 사과의 정체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10. 20. 00:01 ⑮ 폴 세잔 여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과 그림이 있습니다. 새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여 있는 생생한 색감의 사과 여러 개. 그저 사과를 사과답게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1999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우리 돈으로 무려 약 780억원에 판매됐습니다. (그림 한 점의 가격이 오늘날 20억원대 서울 강남 아파트 39채 값과 맞먹는 겁니다.) 그래서 최고가에 거래된 정물화로 이름을 당당히 올리기도 했는데요. 도대체 무엇이 화폭에 담긴 사과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어마 무시한 금액에 거래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 정물화를 그린 작가는 폴 세잔(PAUL CEZANNE·18..

얼마나 번역 잘했길래 노벨상? 외국도서 베스트셀러도 한강이 독차지

매일경제  2024. 10. 15. 16:00 외국도서 1~6위 한강 번역본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품의 번역이 숨은 주역으로 주목받으면서 국내에서도 번역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국내 거주 외국인 뿐 아니라 영어 번역본을 직접 읽어보려는 국내 독자의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외국도서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서 6위는 한강의 번역본이 차지했다. 1위 ‘채식주의자(영국판)’, 2위 ‘소년이 온다(영국판)’, 3위 ‘채식주의자(미국판)’, 4위 ‘소년이 온다(미국판)’ 5위 ‘흰(영국판)’, 6위 ‘희랍어 시간(영국판)’인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판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것은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