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로봇 물고기

바람아님 2014. 8. 1. 10:57

(출처-조선일보 2014.08.01 김기천 논설위원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터졌다. 사람이 나섰다간 방사능에 오염되기 쉽다. 

그래서 로봇이 자동차를 몰고 출동한다. 벽돌이 어지럽게 쌓인 복도를 통과하고, 각목과 철구조물 같은 장애물을 치우고,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전동 톱으로 벽을 뚫기도 하면서 사고 지점으로 접근한다. 

마지막으로 집게 손으로 수많은 밸브를 돌려 잠그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공상소설이 아니라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작년 말에 연 '로봇 챌린지 대회(DRC)'의 한 장면이다. 

대회에 참가한 로봇들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작업을 해냈다. 

사다리 몇 계단을 오르는 데 10분 넘게 걸릴 정도로 동작이 더디고 어설프긴 했다. 

그러나 언젠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위험한 재난 현장에 투입될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만물상 칼럼 일러스트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로봇의 '지능'이 진화했다. 

인간의 섬세한 동작을 흉내 낼 만큼 제어 기술도 발전했다. 로봇 의사가 뇌 수술을 하는 것을 비롯해 교육·의료·복지·국방·건설·

해양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로봇 활용도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로봇 기술이 미래의 국가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수질(水質)을 감시하려고 개발한 로봇 물고기가 제대로 헤엄도 치지 못하는 불량품이라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1초에 2.5m를 헤엄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23cm에 그쳤다. 수중 통신 속도나 거리도 

목표에 크게 못 미쳤다고 한다. 시제품 아홉 대 중에 일곱 대는 고장 나 아예 테스트를 할 수도 없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홍보 동영상까지 공개하며 자랑했던 일치고는 황당한 결과다.


▶로봇 물고기 개발의 선구자 영국 에섹스대는 2012년 스페인 북부 항구에서 시험 운행까지 했다. 

그러나 기술 보완이 필요해 실용화에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 로봇 물고기를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말 4대강에 풀어 넣고 수출을 추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실패한 게 오히려 당연하다. 

그렇다고 로봇 물고기 자체가 사기(詐欺)라고 할 수는 없다. 

수질 오염 탐지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어 선진국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정부의 잘못 때문에 로봇 물고기 개발을 아예 팽개친다면 또 다른 실책이 될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정치가 과학을 악용해선 안 된다는 게 로봇 물고기가 던지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