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아들이 어렸을 때 자주 읽어주던 '돌국(Stone soup)'이라는 유럽 전래 동화가 있다.
지역에 따라 좀 다르게 구전되지만 줄거리는 얼추 비슷하다.
허기진 여행자가 어느 마을에 당도해 집집마다 '한 끼 줍쇼' 구걸했으나 자기들 먹을 것도 없다며 냉대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큰 솥을 하나 빌려 물을 한가득 부은 다음 강가에서 큼지막한 돌을 하나 주워다 잘 씻어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궁금해 모여든 마을 사람들에게 온 마을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돌국을 만드는 중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 돌국은 있는 그대로도 맛있지만 감자, 양파, 버섯에 고기와 각종 양념을 보태면 한결 더 맛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집에 남아도는 식재료를 가져다 보태면서 맨 돌로 시작한 돌국은
군침이 도는 진국이 된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소통에 가장 적극적인 대통령이 나타났다.
야당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정국에 지극히 낮은 자세로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협치(協治)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하나씩 주고받는 '타협(妥協)의 정치'는 진정한 협치가 아니다.
모든 정치 집단이 사사건건 득실만 따지며 정쟁을 일삼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 함께 민생을 챙기는
'협동(協同)의 정치'가 진짜 아름다운 협치다.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나아간다"고 부르짖는다.
진짜 국민만 바라보는지 이제 국민이 그들을 바라볼 것이다.
설령 대통령과 여당이 덜렁 맨 돌만 집어넣고 돌국을 끓인다 하더라도 제발 이번만큼은 모든 정당이 자진해서
국민이 원하는 식재료를 보태며 함께 진국을 끓여주길 바란다.
허구한 날 싸움만 하는 정치권에 진저리가 난다는 국민의 외침을 결코 허투루 듣지 않기 바란다.
다음 총선 때까지 누가 협치에 어깃장을 놓는지 또는 소극적인지 잘 지켜볼 것이다.
통 크게 협치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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