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김형석 칼럼 74

[김형석의 100년 산책]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무덤

중앙일보 2022. 07. 08. 00:32 「 개인농장과 일반인 묘소에 묻혀 민주정치는 인간다운 삶의 유물 한국에선 대통령 묘소 찾지 않아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상 멋쩍어 국민 먼저 생각한 안창호·김성수 정치는 목적 아닌 인간 위한 수단 」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 가면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저택과 농장이 보존되어 있다. 미국인은 물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관광지의 하나이다. 농장 안을 거닐면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워싱턴은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 어색하면 파머(farmer·..

문재인 정권, 더불어민주당은 왜 실패했는가[김형석 칼럼]

동아일보 2022. 07. 01. 03:04 文 정부, 이념에 현실을 맞추는 역방향 행보 '서해 공무원' '北 어부 북송' 논란도 그 일환 정권 위한 정치는 사회악으로 가는 길이다 문재인 정권이 퇴진하고 2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들도 실패한 정부로 인정한다. 대선과 지선에서 참패했다는 표면적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문 정권의 실패가 그만큼 국민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이 있는 국민들은 집권 초창기 청와대의 정치 방향과 과정을 보면서 우려와 회의감을 느꼈다. 그 사람들과 그런 방향의 정치는 현대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구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측이었다. 그 근원은 이념정치의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과 그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권을 ..

23년간 뒷바라지, 뇌졸중 아내가 떠났다..내가 울지 못한 이유 [김형석의 100년 산책]

중앙일보 2022. 06. 24. 00:36 「 뇌졸중 투병 아내 23년 뒷바라지 ‘모범적인 남편’ 부담스러운 영예 남녀는 연정→애정→인간애 겪어 상대 위해주는 희생 단계로 승화 아내 떠나보내면서 눈물 안 흘려 정성을 다했기에 감사한 마음도 」 내 아내가 병중에 있을 때였다. 대학 동창인 정 교수의 얘기다. 요사이 우리 동네 교수 부인들은 김 교수 칭찬이 대단해서 남편들의 위신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 때는 정 교수 부인도 “당신은 내가 중병에 걸린다면 20년 넘게 뒷바라지할 수 있어?”라고 해 “5년은 할 수 있어”라고 농담했다가 구박을 받았다면서 웃었다. 회갑 즈음에 내 아내가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주치의도 수술은 했으나 희망이 없다면서 외국에 나가 있던 아들·딸들에게 시급히 귀..

[김형석의 100년 산책]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중앙일보 2022. 06. 10. 00:34 「 6·25때 참전·전사한 미국 청년들 한국인 자유·평화 위해 목숨 바쳐 자유 억압, 인권 침해는 범죄 행위 무력 신봉하는 세력 용납해선 안돼 」 내 큰딸 H는 1960년대에 미국 유학을 갔다. 대학 기숙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 있는 교회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저녁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편이지만, 가지고 갔던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한국 학생은 혼자뿐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인사를 했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옆자리로 다가와 “당신이 H양이냐”고 물었다. 한국 유학생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고 싶었다면서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 부인은 내 딸에 관한 얘기와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사형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김형석 반성시킨 '사랑의 힘' [김형석의 100년 산책]

중앙일보 2022. 05. 27. 00:34 「 고아 출신 사형수 설득한 군목사 “너를 사랑 못한 우리를 용서하길” 마지막 남은 눈을 기증한 사형수 “내 눈 받은 사람이 사랑을 베풀길” 캐나다 한인교회서 당시 군목 만나 “사랑은 버림받은 사람 손잡는 것” 」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경북 안동의 한 고아원에 이(李)라는 성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18세가 되면서 규정에 따라 고아원을 떠나게 되었다. 이군은 먼저 군 복무를 끝내고 앞날을 개척해 보겠다는 계획으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한다고 해서 주어진 직장은 물론 갈 곳조차 없는 처지여서 그대로 군에 남아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중사까지 진급은 했으나 외롭고 쓸쓸함은 가중되어 갔다.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고 휴가를 나가도 고아원밖에 갈 곳이 없었다..

"과장밖에 못할 신입사원뿐" 70년대 삼성맨들이 준 충격 [김형석의 100년 산책]

중앙일보 2022. 05. 13. 00:36 「 기업체 임직원 특강에 종종 나가 “지도자 되려면 인문학 소양 필수” 미국 대학에선 독서가 필수과제 책 읽지 않고 선진국 될 수 없어 200년 뒤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글문화 활짝 핀 문화강국 소망 」 1970년대는 한국경제 도약의 시기였다. 기업들이 연수원을 갖고 사원교육에 열중했다. 기업체의 중견직원들과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이 그렇게 왕성한 때는 없을 정도였다. 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의에 도움을 주었다. 한 번은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나에게 고전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책 10권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없었다. 5권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으면 과장까지는 시키는 ..

국민은 문재인 정부를 믿고 협력하고 싶었다[김형석 칼럼]

동아일보 2022. 05. 06. 03:03 文정부 자유민주주의 실질적으로 이탈 싸움 부추기며 융합하란 모순도 저질러 문재인 정권이 국민 위배한 것이다 지난 1세기 동안에 우리는 세계의 관심을 유도할 만큼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업적은 정치계보다는 국민의 성장과 노력의 결과였다. 3·1운동부터 사반세기 동안은 교육의 열정과 민족의식의 성장이 광복과 더불어 독립국가의 건립을 성사시켰다. 6·25 전란 이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 의지가 4·19를 계기로 독재정권을 종식시켰다. 그 뒤를 이어 태어난 박정희부터 전두환 정권까지의 군사통치도 국민의 민주화 염원과 투쟁으로 종결지었다. 모든 신생사회와 후진국가가 겪는 독재정치와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나라다운 나라, 세계가 인정하는 법치국가의 기반을 구축했..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 살고 싶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 [김형석의 100년 산책]

중앙일보 2022.04.29 00:36 아흔 넘기며 친구들도 다 떠나가 “아름다운 늙은이 됐으면…” 소원 외모부터 신경, 옷차림 품격있게 노욕 줄이고 지혜 키우려고 애써 지금도 생각나는 선배 둘의 향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유산 내가 90까지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욕심을 갖지도 않았다. 두 친구 안병욱·김태길 교수와 같이 열심히 일하자고 뜻을 모았다. 셋이 다 90까지 일했다. 성공한 셈이다. 90을 넘기면서는 나 혼자가 되었다. 힘들고 고독했다. 80대 초반에는 아내를 먼저 보냈는데, 친구들까지 떠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90대 중반까지는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0세까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계의 선배 동료 중에는 97, 98세가 최고령이었고, 연세대 ..